서포터즈 이야기

[리뷰] 김은영 '거침없고 자유로운 그루브' / 최윤화 '영롱한 서정을 그리다'

  • 작성일 2019.03.27
  • 조회수 777

김은영 ‘거침없고 자유로운 그루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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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화 ‘영롱한 서정을 그리다’





공연일: 2019.03.07 목 저녁 8시

방송일: 2019.03.28 목 밤 11시 55분

글: 차정호

사진: 기예주

우리는 정해진 대본을, 있는 그대로 소화하는 배우를 보고 칭찬하지만 스스로를 역할에 투영시켜 자기화 하는 배우를 보고는 감동한다. 그 사람만이 갖는 진짜 아우라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평범한 일상에서도 마찬가지다. 평소의 대화는 무미건조할 수 있지만 술자리에서 무의식적으로 나눈 잠깐의 대화에서 상대방의 진짜 모습을 보곤 한다.

음악에서는 재즈가 바로 뮤지션의 ‘진짜 모습’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장르가 아닐까. 정해진 형식이 있지만 그 안에서 무의식적으로, 아니 본능적으로 자기 자신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리듬, 메인 멜로디를 즉흥 변주로 표현해내는 장르, 재즈. 그래서 나는 재즈 무대 한 편을 듣고 나면 한 사람, 뮤지션과 깊은 대화를 나눈 느낌을 안고 돌아간다. 음악을 들었다기보다 한 사람을 만났다는 느낌 말이다. 이래서 나는 사람 냄새 물씬 나는 재즈의 매력에서 빠져 나올 수 없다.

EBS Space 공감의 “한국 재즈의 새 얼굴”은 매년 주목해야 할 4명(그룹)의 재즈 뮤지션을 선정하여 소개하는 특별기획이다. 올해 “2019 한국 재즈의 새 얼굴”에서는 베이시스트 정수민, 밴드 경기남부재즈, 피아니스트 김은영, 피아니스트 최윤화를 선정해 공감에서 선을 보인다. 어찌보면 한국 재즈의 최전선(표현이 경박했다면 용서바란다)을 양질의 무대로 감상할 수 있으니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3월 7일의 무대는 피아니스트 김은영과 피아니스트 최윤화의 무대였다. EBS 스페이스 공감의 기획위원이자 재즈평론가인 김현준은 무대 전, 두 뮤지션의 음악적 대비가 보는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과연 이들의 음악은 어떤 음악일까.




김은영

공연 목록

1. Free Improvisation

2. The Circus

3. Spring Break

4. 삑삑

5. Public Enemy

김현준 평론가가 추상적인 음악세계가 미술로 비유하자면 마치 피카소와 같은 추상파가 떠오른다고 했던 김은영 피아니스트. 이 같은 평에 화답하듯, 김은영은 'Free Improvisation', 즉흥연주로 그 무대를 연다. 수줍음을 많이 탄다고 말한 것과는 달리, 건반 위에서 불협화음을 거침없이 누르며 관객을 긴장시킨다. 수상한 음색이 흐르는 것 같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펼치는데 주저함이 없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점점 속도가 붙더니 자신감을 넘어 개성과 자유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한다. 빠르게 움직이는 높은 라인의 오른손과 묵직하게 내려치고 중심을 잡아주는 낮은 라인의 왼손이 강렬한 인상을 준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서 화려하게 펼쳐 둔 것을 윗 음계의 잔상으로 표현해내는 것을 듣고 김은영 피아니스트에 대한 기대가 높아졌다.




두 번째 곡인 'The Circus'는 3개의 음악이 합쳐진 한 편의 재미있는 단막극 같은 곡이었다. 6분이 넘는 곡에 Elephant, Clown, Ring of Fire를 주제로 서커스의 면면을 개성있게 표현해내려는 음악적 시도로 보인다. 첫 번째 Elephant는 제목 그대로, 묵직하지만 한편으로는 귀여운 코끼리의 등장을 연상케한다. 베이스와 피아노가 코끼리의 발걸음을 묘사한다. 평범했다면 베이스가 코끼리의 모든 것을 묘사했을텐데 김은영 피아니스트는 이 곡에서 오히려 피아노가 발걸음의 크기를 묘사했고 베이스가 거기에 무게감을 더하는 방식으로 모습을 표현했다. 기분 좋은 등장이다. 서커스가 시작되자 관객은 설렐 뿐이다.




Clown의 등장은 피아노가 마련된 무대에 드럼이 뛰어노는 방식으로 표현됐다. 적재적소에 장난스럽고도, 강한 인상을 주는 드럼의 연주가 꼭 광대의 우스꽝스러운 몸짓과 짙은 분장을 떠오르게 한다. Ring of Fire은 말 그대로 불의 고리지만, 좌중을 압도하는 불의 모습이 아니라 어떤 신기함의 대상이고 놀라움의 대상이다. 세 악기, 피아노와 드럼, 베이스의 팀워크가 인상적이다. 리드미컬한 파트였다.



세 번째 곡,' Spring Break'는 베이스와 피아노가 서두에 주제를 표현하기 위해 리듬, 음을 반복하며 곡의 분위기를 잡는다. 절제되지만 작은 변주에 집중하게 되는 것이 마치 봄의 변화와 흐름을 보는 듯하다. 피아노 솔로도 튄다기보다 살짝 살짝 보인다고 해야 할까. 솔로지만 흐름을 깨지 않으려는 듯한 노력이 보였다. 그렇지만 전체 음악을 들어봤을 때 이 같은 솔로는 그 파트를 가장 잘 메운 솔로로 느껴졌다. 뒤로 갈수록 솔로들은 현란하고 강렬해졌지만 이전의 절제된 파트 덕분에 그 강렬함이 쾌감을 불렀다. 몰입할 수 밖에 없는 곡의 구조였다.



다음 곡, '삑삑'은 제목이 참 재밌다는 생각을 했는데 실제로 무대가 시작되자 왜 삑삑이라고 붙일 수 밖에 없었는지 납득이 갔다. 세 악기 모두 끊어치는(?) 연주(특히 색소폰)가 삑삑이라는 이름의 이유였다. 서두의 색소폰의 서정적인 솔로가 기억이 난다. 하지만 솔로는 점차 절제되지 않은 야성미로 전환됐다. 아니 야생미라고 해야 옳을까. 크고 강렬하기보다는 마치 찰나의 분열을 노려 연주하는 모습이 야생과 같았다. 자유로움과 맹렬함이 관객에게 전이된다. 피아노의 솔로는 그대로 바통을 이어받는다. 이전에 살포시 밟은 피아노 페달이었지만 이번엔 힘있는 연주로 관객의 마음을 울린다. 피아노의 솔로 이후 테마로 곡이 마무리되는 듯 했으나 이내 기타와 베이스가 주고 받는 트레이드가 연주된다. 어떤 이슈에 대해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 두 명이 조그마한 책상에 앉아 치열하게 토론하는 장면이 상상된다. 이 토론은 막무가내 토론이 아닌 서로의 생각을 인정하고 때론 고개를 끄덕이며 진행되는 의미있는 토론이다. 결국 마무리에선 모든 악기들이 갖은 혼란과 충돌을 이겨내고 합치되며, 각자의 목소리로 제각기 자신의 연주를 마무리하며 곡을 끝낸다.




마지막 곡, 'Public Enemy'. 추리 드라마에 나오는 으슥한 골목, 비 내리는 그 골목을 연상시킨다. 어느 정도의 서사를 예고하는 도입부다. 피아노 솔로가 마침 이야기를 풀어낸다. 정확히 무엇에 관한 이야기였을까. 지나치게 현실적이지도 비현실적이지도 않은, 그래서 신비롭고 동화적이다. 무대의 따뜻하면서도 불안한 보랏빛 조명이 음악과 정말 잘 어울렸다. 분명한 건 수상한 무언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무엇이 Public Enemy, 공공의 적이었을까.





최윤화

공연 목록

1. 바람이 부는대로

2. Intro+사랑은 깊으기 푸른하늘

3. 오월

4. 내 마음 아실 이

5.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김현준 평론가가 앞서 설명했듯이 김은영의 스타일이 미술의 추상파에 비유됐다면 최윤화는 서정적인 인상파에 비유할 수 있었다. 특히 김영랑 시인의 시를 자신만의 재즈 스타일로 풀어낸 2집, ‘영랑시음’은 최윤화에게 ‘서정재즈’라는 수식어를 달게 만들었다. 과연 그의 서정 재즈란 무엇일까?




바람이 부는 대로 찾아가오리

흘린 듯 기약하신 임이시기로

행여나! 행여나! 귀를 종금이

어리석다 하심은 너무로구려

문풍지 설음에 몸이 저리어

내리는 함박눈 가슴 해어져

헛보람! 헛보람! 몰랐으료만

날더러 어리석단 너무로구려

함박눈-김영랑



첫 번째 곡 ‘바람이 부는 대로’ 는 최윤화의 음악이 서정적이다라는 설명을 증명(?)하는 무대였다. 짙은 물감이 물 속에서 퍼지는 듯한 모습을 무대내내 상상했다. 만약 일상에서 이 음악을 틀어놓으면 그 날의 느낌과 분위기가 이 음악에 물들 것 같다. 이러한 느낌을 내는데에는 기타 솔로가 큰 역할을 했는데 기타의 선율이 곡선을 그리듯 울리며 퍼진다. 마음이 편안해지는 기타의 솔로. 피아노 솔로도 곡의 흐름을 역행하여 돋보인다는 느낌보다는 색을 입힌다는 말이 더 어울린다. 어른을 위한 동화 한 편을 듣는 것 같기도 하다. 곡은 테마의 기타 선율이 다시 한 번 들리면서 마무리된다. 서정적이고 여운있는 마무리였다.




사랑은 깊으기 푸른 하늘

맹세는 가볍기 흰구름쪽

그 구름 사라진다 서럽지는 않으나

그 하늘 큰 조화 못 믿지는 않으나

사랑은 하늘-김영랑


두 번째 곡, ‘사랑은 깊으기 푸른 하늘’은 서글픈(?) 보컬의 스캣과 피아노 선율로 시작한다. 하지만 이내 발라드적인 테마가 흐르는데 보컬의 가사(시)와 멜로디가 관객의 풍부한 상상을 돕는다. 시를 음악으로, 재즈로 옮기다보니 어떤 악기나 연주가 튄다기보다 시를 어떤 분위기로 표현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의 시간들이 몸으로 느껴지는 무대였다. 뮤지션으로서 욕심이 날 법도 하지만 원작의 재해석을 충실히 시도할 뿐, 과장하여 감정을 끌어내지 않는다. 덕분에 한 편의 서사가 완성되어 도입부와 다르게 점차 고조되는 후반부가 거부감이 들지 않았고, 오히려 일종의 쾌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느린 박자 위에 리드미컬하면서도 모던한 각 세션들의 연주도 백미였다. 어쩌면 이 한 곡이 이 앨범, 이 무대를 대표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들길은 마음에 들자 붉어지고

마을 골목은 들로 내려서자 푸르러진다

바람은 넘실 천이랑 만이랑

이랑이랑 햇빛이 갈라지고

보리도 허리통이 부끄럽게 드러났다

꾀꼬리는 엽태 혼자 날아 볼 줄 모르나니

암컷이라 쫓길 뿐

수놈이라 쫓을 뿐

황금 빛난 길이 어지럴 뿐

얇은 단장하고 아양 가득 차 있는

산봉우리야 오늘 밤 너 어듸로 가 버리련?


오월-김영랑



푸르른 경치의 봄을 표현하고자 했던 최윤화 그룹의 세 번째 곡 ‘오월’은 베이스가 밑바탕을 그리고 드럼이 날씨를 채색하며 기타는 미묘한 움직임을 표현했고, 마지막으로 피아노는 그 그림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5월의 역동성, 푸르름이 그렇게 표현된다. 특히 기타의 솔로는 언제나 그렇듯, 즐겁다. 독보적인 선율을 그려서도 있지만 기타 특유의 역동성이 있다. 모든 악기를 뚫고 나오는 선율이 조화로우면서도 화려하다. 그 스킬을 이 곡에서 즐기길 바란다. 피아노는 민요적인 음으로 분위기를 환기시킨다. 이후 엔딩테마로 돌아가는데 곡이 끝나는게 아쉬울 뿐이다. 한 편의 영화로, 그림으로 진하게 남는다.




내 마음을 아실 이

내 혼자 마음 날같이 아실 이

그래도 어데랴 계실 것이면

내 마음에 때때로 어리우는 티끌과

속임 없는 눈물의 간곡한 방울방울

푸른 밤 고이 맺는 이슬 같은 보람을

보밴 듯 감추었다 내어 드리지

아! 그립다/내 혼자 마음 날같이 아실 이

꿈에나 아득히 보이는가

향 맑은 옥돌에 불이 달아

사랑은 타기도 하오련만

불빛에 연긴 듯 희미론 마음은

사랑도 모르리 내 혼자 마음은

내 마음 아실 이 – 김영랑


네 번째 곡 ‘내 마음 아실 이’는 그리움과 애달픔이 주제인 곡이었다. 하지만 최윤화는 이 주제를 재해석해 더욱 행복하게 그리고 싶다는 설명을 했다. 짝사랑에 가까운 아쉬움이랄까. 드럼의 재미난 연주를 시작으로 곡이 막을 연다. 곡을 들으며 든 생각은 지금 모 음원사이트 상단에 둬도 한참동안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겠다 라는 생각이었다. 대중적인 멜로디와 분위기, 거기에 기타 솔로가 보컬만큼이나 존재감이 있어 곡을 보다 다채롭게 만든다. 피아노 솔로는 마치 내 외로운, 안타까운 마음을 친구에게 넋두리 하는 듯, 우울하기 보다 밝지만, 그래서 더 안타까운 그 미묘한 감정선을 살려낸다.




내 마음의 어딘 듯 한 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돋쳐 오르는 아침 날 빛이 빤질한

은결을 도도네

가슴엔 듯 눈엔 듯 또 핏줄엔 듯

마음이 도른도른 숨어있는 곳

내 마음의 어딘 듯 한 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 김영랑



최윤화 그룹의 마지막 앵콜 곡은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였다. 곡 연주 전, 최윤화는 시나 예술에 한 가지 해석을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나만의 생각으로 표현하고 싶었다라는 이야기를 했다. 실제로 이 무대는 김영랑 시인의 시를 잘 모르던 사람들에게는 서정적 감정을 심어줬고, 시인을 알던 사람들에게는 색다른 해석을 즐기게끔 했다. 무대는 앵콜에 걸맞았다. 보컬의 소울풀한 음색이 돋보였고 피아노의 리듬감도 전체 곡의 분위기를 전환하는 듯 볼 거리, 아니 들을 거리가 많은 무대였다.

거침없고 자유로운 그루브

김은영

한층 더 풍성해진 사운드의 첫 리더작 「Silent Child」를 발표한

재즈 피아니스트 김은영.

다양성을 ‘자기화’시켜 실험 재즈의 계보를 이어가는 그녀의 손끝에서

한국 재즈의 미래를 만나보자

영롱한 서정을 그리다

최윤화

‘김영랑 시인의 시에 가락을 붙여 읊다’

‘시가 가진 음률을 재즈적 언어로 표현하다’

재즈 피아니스트 최윤화의 2집 「영랑시음(永郞詩吟)」.

음악가를 꿈꾸기도 했던 김영랑 시인의 섬세한 서정시와

컨템포러리한 재즈 사운드를 접목한 ‘서정 재즈’의 진수를 만나보자

공연일: 2019.03.07 목 저녁 8시

방송일: 2019.03.28 목 밤 11시 55분

글: 차정호

사진: 기예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