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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시대에 병자호란을 돌아보다 3강- 후금의 건국과 광해군의..

광해군은 조선의 15대 임금으로 선조와 공빈김씨 사이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임진왜란 당시, 선조는 임시조정인 분조(分朝)를 만들어 광해군에게 조선에 머물도록 지시하였고, 광해군은 민심 수습, 군사 모집 등 적극적인 분조 활동을 하였다. 이후 1608년 광해군은 선조에 뒤를 이어 임금으로 즉위하였다. 1607년 누르하치는 두만강의 홀온 지역을 정복하면서 계속해서 자신의 세력을 넓혀갔고, 이에 광해군은 누르하치의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적국인 일본과의 기유약조를 체결하게 된다. 또한 광해군은 후금(누르하치)을 상대로 기미책, 자강책, 적군 동향 파악 등의 정책을 시행하였다. 화포 제조법이 담긴 화기도감을 개편하였고, 군사력 보강을 위해 무과 시험을 통한 병력을 충원하는 한편, 군사들의 훈련 상태를 열무제(閱武才), 관무제(觀武才)를 통해 점검하였다. 또한 적군의 동향을 파악하는 한편 조선의 군사 기밀이 유출되지 않게 하는 것에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누르하치의 여진족은 팔기제를 정비하여 평소에는 백성을 다스리고 전란시에는 군인으로 전쟁에 참여시켰다. 팔기제는 군사력을 높여, 결국 1616년 대금(후금)을 건국하게 된다. 1618년, 후금은 7대한을 명분으로 명나라를 침략하고, 이에 명나라는 조선에 군병 지원을 요청한다. 광해군은 명나라 파병이, 후금의 보복공격으로 이어질까 두려워, 명의 원군요청을 망설이게 된다. 하지만 조선은 재조지은을 강조하는 신하들과 명나라의 압박으로 인해 결국 1619년 강홍립이 이끄는 1만 1천 5백 명의 원군을 명에 파병하게 된다. 하지만 강홍립이 이끌던 조선의 군대는 심하전투에서 후금에 패배하고 항복한다. 명나라 또한 누르하치의 세력을 견제하기엔 국력이 많이 부족하였다. 당시 명나라의 13대 왕인 만력제는 국정에 관심이 없었으며, 사리사욕을 챙기기에 급급하였다. 결국 명나라는 두송 장군의 이기심으로 누르하치 군에 대파 당하고, 1625년 후금은 수도를 심양으로 천도하게 된다. 이에 조선의 서인들은 누르하치 군에 패한 광해군과 강홍립에 책임을 물었으며, 인조반정을 일으켜 광해군을 쫓고 인조를 왕위에 앉혔다. 명나라는 인조반정을 반정이 아닌 찬탈로 생각했고, 조선은 반정의 정당성을 명나라에 승인 받는 일이 절실했다. 이에 명나라는 후금(청)을 견제하기 위해 다시 조선에 압박을 가했고 인조는 친명배금 정책을 펼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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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페이지EBS 역사특강 | PLUS2 수  오후 1시 20분 ~ 오후 2시 10분 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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