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일: 2015년 9월 6일 (일) 낮 2시 15분
부제: 마르셀의 여름
원제: La Gloire de mon pere / My Father's Glory
감독: 이브 로베르
출연: 필리프 코베르, 나탈리 루셀, 디디에 팽, 쥘리앙 시아마카, 테레즈 리오타르
제작: 1990년 / 프랑스
방송길이: 105분
나이등급: 12세
줄거리:
마르셀은 19세기 말 프랑스 남부의 오바뉴에서 교사인 아버지와 재단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난다. 아버지 조세프가 근무하는 학교를 자기 집 앞마당처럼 드나들며 놀던 어린 그는 일찍 글을 깨우치는 등 명석한 면모를 보인다. 그러나 어머니 오귀스틴은 두통을 유발한다며 책을 못 읽게 하는 등 어린 아이는 어린 아이답게 자라야 한다는 지론에 따라 그를 보살핀다. 그의 눈에 아버지는 결점이라고는 없는 일종의 우상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방학을 이용해 이모의 가족들과 별장으로 놀러가면서 아버지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한다. 사냥과 자연, 일상적 상식에 있어서 이모부 쥘의 박학다식함과 재능을 따라가지 못할 뿐만 아니라 변명만을 늘어놓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마르셀은 적잖이 실망한다. 하지만 동시에 아버지의 마음을 읽고 이해한 마르셀은 사냥꾼들이 가장 높이 쳐주는 대왕자고새를 아버지가 총으로 맞히자 냉큼 달려가 새를 높이 쳐들고 소리치면서 아버지의 체면을 세워준다. 그러나 어른들의 허영심, 거짓됨, 약한 모습 등에 대한 깨달음은 계속되어, 가령 낚시를 한 물고기와 기념사진을 찍은 동료교사를 두고 인간의 존엄성을 떨어뜨린다며 비웃던 아버지가 자신이 사냥한 새와 함께 버젓이 사진을 찍는 모순에 씁쓸함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아버지도 결국에는 전지전능한 인물이 아닌 한낱 나약한 인간임을 받아들인다. 한편 그는 산 속에서 길을 잃었을 때 도와준 소년 릴리와 친구가 되어 우정을 쌓는 가운데 함께 자연을 만끽하는 동시에 두려워할 줄 알게 된다. 이처럼 방학을 통해 한층 성장한 마르셀은 개학을 맞아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집으로 돌아온다.
주제:
주인공 마르셀이 프랑스 남부의 평온하고도 소박한 모습을 간직한 자연과 마을을 배경으로 어린 시절의 추억을 일인칭 시점의 내레이션을 통해 들려준다. 전지전능한 영웅으로만 보이던 아버지에 대한 아들의 인식이 변화하는 과정, 그리고 어른들의 모순, 거짓, 자기 합리화, 나약함에 실망하다가 이를 점차 이해하고, 결국에는 따라 하기까지 하면서 어른들의 세계를 수용하고 여기에 차차 편입되는 주인공의 모습을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잔잔하게 보여준다. 마냥 천진난만한 동심의 세계를 보여주는 그림 같은 이야기라기보다 어찌 보면 씁쓸하면서도 인간이라면 누구나 어린 시절 성장 과정을 통해 가정에서, 사회에서 경험하면서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깨달음과 변화를 따뜻한 시선으로 재치를 곁들여 그려내고 있다.
감상 포인트:
이 작품은 마르셀 파뇰(Marcel Pagnol, 1895-1974)의 자전적 연작소설인 <어린 시절의 추억(Souvenirs d'enfance)>의 1권인 <아버지의 영광(Le gloire de mon pere)>(1957)을 영화화 한 것으로서 비교적 원작에 충실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마르세유를 중심으로 한 프로방스 지방을 대표하는 연극인이자 영화인이며 작가인 마르셀 파뇰은 2권 <어머니의 성(Le chateau de ma mere)>과 3권 <비밀의 시간(Le temps des secrets)>은 각각 1958년과 1960년에 출판했다. 영어교사로 출발한 그는 짧은 교직생활을 접고 극작가로 입문한다. <토파즈(Topaze)>(1928), <마리우스(Marius)>(1929) 등의 희곡이 성공을 거두면서 이름을 떨치기 시작한 그는 1934년 영화 제작사를 설립하여 페르낭델(Fernandel), 루이 주베(Louis Jouvet) 등 당대 유명 배우들과 함께 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1946년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으로 선출된 후에는 연극과 영화 대신 글쓰기로 방향을 서서히 전환했다. 1952년 연출한 영화 <마농의 샘(Manon des sources)>은 호평을 받은 후 1962년 두 권의 소설로도 출간됐으며 1986년 클로드 베리(Claude Berri) 감독이 이를 리메이크하기도 했다. 1990년 이브 로베르(Yves Robert) 감독이 스크린에 옮긴 <마르셀의 여름>은 1997년 우리나라에서도 개봉되면서 잔잔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연작소설 2권인 <어머니의 성>도 같은 해 영화화되었고 국내에서는 <마르셀의 추억>으로 소개되었다.
한편 아버지 조세프(Josephe) 역을 맡은 필리프 코베르(Philippe Caubere)는 1950년 마르세유에서 태어났으며 1970년대 '태양극단'의 중추적 역할을 맡았고 지금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중견배우이다.
감독:
1920년 프랑스 소뮈르에서 태어난 이브 로베르(Yves Robert)는 영화감독이자 배우, 제작자로 활동했다. 13살의 어린 나이에 생업에 뛰어는 그는 다양한 직업을 거친 후 19살에 극단에 몸담게 된다. 마르셀 에메(Marcel Ayme), 장 아누이(Jean Anouilh) 등 유명 극작가들의 연극무대에서 재능을 보인 그는 영화배우로 전향하여 마르셀 카르네(Marcel Carne)를 위시한 많은 감독들의 작품에 출연한다. 1950년대 들어서는 감독으로도 발을 내딛은 그는 1961년 <단추전쟁(La guerre des boutons)>으로 장비고(Jean Vigo) 상을 수상하며 실력을 인정받았으며 <안녕, 예술가(Salut, l'artiste)>(1973), <우리는 모두 천국에 갈 것이다(Nous irons tous au paradis)>(1977) 등 대중적 코미디 영화 부문에서 확고한 위상을 굳혔으며 <마르셀의 여름> 등이 호평을 받으면서 성장영화의 대부로도 자리매김했다. 이후 영화제작자로도 왕성한 활동을 펼친 그는 2002년 5월 파리에서 뇌출혈로 81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1부 – 알버틴 단층
*방송일시: 본방송 2015년 9월 6일 (일) 오후 4시 45분
재방송 2015년 9월 10일 (목) 아침 6시 10분
줄거리
아프리카의 중앙부를 갈라놓으며 이 땅에 이전과는 전혀 다른 기후와 환경을 만들어낸 동아프리카 지구대. 그 중에서도 알버트 호수에서 탕가니카 호수까지 어이지는 서쪽 가지를 알버틴 단층이라 하는데, 만년설을 이고 있는 산맥과 건조한 사바나, 울창한 밀림과 늪지대 등 다채로운 자연환경을 자랑하는 이곳에는 독특하고 다양한 생물들이 넘쳐난다.
알버틴 단층이 흥미로운 이유는 그 형성을 통해 주변 자연환경과 기후를 바꿔놓음으로써 생물들의 진화와 돌연변이를 촉발한 것. 그 좋은 예 중 하나가 우리에게도 익숙한 동물인 기린이다. 단층으로 인해 한쪽은 습해지고 한쪽은 건조해지자 본디 같은 조상 밑에서 태어난 오가피와 기린이 전혀 다른 습성과 생김새를 지니게 된 것. 습한 밀림에서 살게 된 오가피는 작은 체구를 유지한 채 숲에 숨어사는 은둔자가 되었고, 건조한 사바나에 살게 된 기린은 나뭇잎을 따먹기가 어려워지자 높은 가지 끝의 먹이를 공략하기 위해 목이 길어졌다는 것이다. 콩고 강의 물길을 바꿔놓아 한때 한 종이던 침팬지를 폭력적인 침팬지와 온순한 보노보로 갈라놓은 것 역시 알버틴 단층의 업적. 먹이가 풍부한 지역에 남은 보노보는 암컷 연장자가 다스리는 평화로운 무리를 이룰 수 있었고, 다른 친족들과 먹이를 두고 경쟁해야 하는 침팬지는 공격적인 수컷의 지휘 하에 서열이 엄격한 폭력적인 무리를 이루게 됐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해야할 것은 인류가 네 발로 걷는 습관을 버리고 직립보행을 배워 현생인류로 진화하게 된 것 역시 알버틴 단층에 그 원인이 있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과연 인류의 조상이 평지의 숲을 버리고 단층으로 인해 솟아오른 산으로 이주한 것이 우리를 현재의 모습으로 이끈 것일까?
미워도 다시 한번
방송일: 2015년 9월 6일 (일) 밤 11시
감독 : 정소영
출연 : 문희, 신영균, 전계현, 김정훈
제작 : 1968년
영화길이 : 89분
나이등급 : 15세
줄거리
혜영(문희)은 신호(신영균)와 사랑하는 사이지만 신호는 기혼자였다. 시골에서 신호의 아내(전계현)와 자식이 상경해서야 혜영은 그 사실을 알게 되었고, 신호 곁을 떠나 혼자 신호의 아들, 영신(김정훈)을 낳아 기른다. 하지만 8년 후 아들의 장래를 위해 신호를 찾아와 아이를 길러줄 것을 부탁한다. 아이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여 외로운 나날을 보내고 엄마만을 찾는다. 결국 신호의 가족들은 영신을 혜영의 품으로 돌려보내기로 하고 혜영은 신호를 데리고 시골로 내려간다.
해설
영화 <미워도 다시 한번>은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1960년대 한국영화 최고 흥행작이다. 수많은 관객들, 특히 주부관객들을 눈물 바다로 만들었던 이 영화는 홈 멜로 드라마의 여러 가지 특징들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영향으로 비슷한 제목의 영화들이 한때 많이 만들어지기도 했으며, 정소영 감독은 이 영화의 성공에 힘입어 이후에도 <속 미워도 다시 한번(1969)>, <미워도 다시 한번 3편(1970)>, <대완결편 미워도 다시 한번(1971)> 등 시리즈를 계속해서 만들었고 변장호 감독에 의해 1980년대 2번, 그리고 최근 정소영 감독이 다시 <미워도 다시 한번 2002>를 만들었다.
안창복 촬영감독의 증언에 의하면 국내의 성공에 힘입어 이 영화는 대만 등 아시아에 수출되기도 하였는데 안타깝게도 그때 보내진 네가 필름(영화를 해외로 수출할 때 필름에 대한 법적 규정이 없었던 터라...)이 현재는 남아있지 않고 프린트만 전해지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영화의 상태가 썩 좋지 못한 아쉬움을 남기지만 1960년대 후반 우리 관객들의 취향과 홈 멜로 드라마의 특징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문희, 신영균, 전계현의 멜로 연기와 당시 아역 영화배우였던 김정훈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를 보는 재미는 남다르다.
특기사항
* 수상경력
제 12회 부일영화상 감독상, 여우조연상(전계현)
제 3회 남도영화제 여우주연상(문희), 특별상(김정훈)
제 3회 백마상 여우주연상(문희), 여우조연상(전계현)
* 1960년대 한국영화 최고 흥행작 가운데 하나
(당시 서울인구 450만, 단일 극장 개봉으로 약 36만명의 관객 동원)
감독
본명 웅기. 1928년 5월 11일에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국학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하여 남녀의 사랑을 다루는 멜로드라마 연출에 탁월한 재능을 연마하였다. 1960년대 후반까지 KBS 드라마를 연출하다가 영화연출로 방향을 전환하였다. 1967년 <내 몫까지 살아주>로 감독 입문하여 1968년 <미워도 다시 한번>을 연출하여 대표적인 한국멜로드라마의 감독의 반열에 오르게된다. 문희와 신영균이 주연한 <미워도 다시 한번>은 개봉관이었던 대지극장을 관객의 눈물로 가득차게 했으며 1960년대 멜로드라마 붐을 일으키는 견인차 역할을 하였다. 전형적인 멜로드라마로서 <미워도 다시 한번>은 미혼인 혜영(문희)과 유부남인 신호(신영균)의 사랑이 가정이 있는 신호를 위한 혜영의 희생으로 당시의 관객들의 슬픔 정서를 유발하였던 작품이다. 이 작품은 당시 관객들에게는 혜영의 이룰 수 없는 사랑과 기구한 운명에 대해 깊은 공감을 얻어냈지만 후대에 페미니즘 비평가들에게는 가부장적 질서 유지하기 위한 여성의 희생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비판의 표적이 되기도 하였다.
그 후 <미워도 다시 한번>은 1969년 <미워도 다시 한번 2편>과 1970년 <미워도 다시 한번 3편>과 1971년 <미워도 다시 한번 완결편>이 속편으로 제작되어 4편의 속편을 한 감독에 의해 제작되는 진기록을 남기게 되었다. 2000년도에는 <미워도 다시 한번 2000>을 다시 한번 연출하여 이 영화에 대한 애정을 보였다.
정소영의 영화는 <미워도 다시 한번>과 그 속편 그리고 그 외 작품으로 양분할 수 있을 정도로 <미워도 다시 한번>의 비중이 크다. 1972년<이 생명 다시 한번>과 <내가 버린 여자>(1977), <겨울로 가는 마차>(1981) 등 멜로드라마를 통해 작품세계를 지속적으로 구축해왔다. 특히 방송작가 김수현과 작업한 작품이 다수를 차지한다. 김수현의 시나리오를 영화화한 대표적인 작품은 <저 눈밭에 사슴이>(1969), <잊혀진 연인>(1969), <미원도 다시 한번 3편>(1970), <겨울로 가는 마차>(1981)가 있다.
영화평론가 변인식은 정소영식 멜로드라마의 상표는 “깔끔함과 눈물”로 명명하였으며 “삼각관계에 따른 부산물인 딸과 친아버지의 핏줄의 당김”의 모티프(<마지막 겨울>)를 잘 다룬다고도 평가한 바 있다. 1980년대에는 한림영화사를 운영하며 제작, 수입도 활발히 하였다. 대표적인 제작 및 수입 영화로는 <필녀> <물레야 물레야> <사랑의 노예> <욕망의 늪>등과 <보디 히트> <스워드>등이 있다.
- 출처: 한국영화감독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