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의 고랭지 밭, 평창 청옥산 꼭대기 육백마지기에는 나물 대신 별 보기 명소로 뜨고 있다. 평창으로 귀촌해 인연을 맺었다는 김금주‧고정옥‧박현 씨도 그 소문 듣고 청옥산으로 가을 소풍을 나섰다. 청옥산 중턱, 인근 주민들의 휴식처라는 회동계곡을 시작으로 가을날 흰 눈 내리는 자작나무 숲을 지나 육백마지기를 보랏빛으로 물들인 개미취 꽃밭까지 완전정복했다. 가을 청옥산에서 별을 기다린 그녀들은 별을 만날 수 있을까? 차재호‧최연자 씨 부부는 육백마지기에서 밭농사가 아닌 꽃 농사를 짓는다. 고랭지 농법으로 수국과 카네이션을 재배하는데 선선해지는 이 가을이 출하 적기이다. 결실을 앞둔 부부의 꽃 농장에는 행복의 향이 가득하다. 육백마지기의 유일한 주민인 차재호 씨에게는 몇 달 전 새로운 이웃이 생겼다. 꽃 농장 옆에 커피와 밥을 파는 카페가 문을 열었다. 카페의 주인은 차재호 씨의 누나와 남동생으로 고향에서 인생 2막을 함께 꾸리는 삼남매는 밤하늘의 별을 보며 어떤 소원을 빌까?
# 공채의 문을 두드리는 우리
충북 예산에 사는 박세연(24) 씨는 서울에서 학교를 졸업한 뒤 고향으로 내려온 그녀는 2년째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 작년에만 65개의 기업에 이력서를 넣고, 올해에도 그녀는 쉴 틈 없이 자기소개서를 쓴다. 서류 합격, 26%의 확률을 뚫고 간신히 면접을 본다 해도 쟁쟁한 경력과 경험을 갖춘 중고 신입들 앞에 취업의 꿈은 무너지고 만다. 수시채용이 더 확대되기 전에 취업해야 한다고 말하는 그녀의 일상에서 그녀의 조급한 마음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그녀는 오늘도 한 줄의 스펙을 위해 2시간이 넘는 길을 나선다.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만한 스펙 한 줄을 적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달리는 그녀의 일상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그녀의 일상을 통해 채용 시장의 흐름에 혼란스러워하는 취업 준비생의 모습을 만나보고자 한다.
# 공채가 아닌 다른 길, 다른 방향.
가격 비교 플랫폼 회사에 다니고 있는 직장인, 송기윤 씨는 자신을 ’공채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한다. 그는 수십 번 공채의 문을 두드렸지만, 그 문을 뚫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기만의 열쇠를 만들어 취업의 문을 열었다. 직무에 맞는 역량을 쌓고, 그 역량을 필요로 하는 기업에 지원했다. 또 그는 이직을 통해 점점 더 큰 기업으로 향한다. 그것은 현재 진행형이다. 공채가 아닌 길은 충분히 있다. 공채의 실패를 겪더라도 자존감을 잃지 않았으면 한다. 그는 이 시대의 청년들에게 말해주고 있다. 그가 공채가 아닌 다른 길을 택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남들과 다른 길을 걸으면서 그가 만든 열쇠는 무엇이었을까? 그의 사례로 공채만이 취업의 기회는 아니라는 사실을 엿볼 수 있지 않을까?
# 낯설지만 이미 와 있는 미래. 공채가 없는 세상
구직자들이 공채에 몰리는 이유는 결국 좋은 일자리의 문제다. 그렇다면 어느 곳이 좋은 일자리인가.
아주 오랫동안 우리 사회에 축적된 문제다. 하지만 구직자들은 지금 당장 어느 곳이 좋은 일자리인지
알아내야 하는 즉각적인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또한 ‘직무에 대한 이해도와 경험’이 우선이라고 말하는
수시채용은 취업 준비생들을 납득 시키기에는 그에 대한 정보가 턱없이 부족했다.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를 또다시 고민하고, ’언제 공고가 뜰지, 몇 명을 채용하는 건지‘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다. 일찌감치 스타트업 기업과 구직자의 정보 공유에 일찌감치 주목한 한 회사가 있다. 기업들의 정적인 정보는 취업 준비생들에게 도움이 될 수 없다고 그들은 말한다. 또, 그들은 기업과 직무에 대한 구체적이고 생생한 정보를 전달해주면서 기업과 구직자 사이의 다리를 마련해준다. 이미 공채가 없는 세상은 우리 사회의 한구석에 존재하고 있는 것 이다. <다큐 시선>에서는 공채가 사라지고 있는 이 시대의 흐름에 대해 살펴보고, 구직자와 기업이 어떤 시선을 취해야 하는지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한다.
# 희망의 땅, 인도네시아!
10월 24일에 방송되는 인도네시아 1부 <포용과 공존의 도시 자카르타> 편에서는 ‘막돼먹은 영애씨’ 배우 김현숙과 ‘원조 걸크러시’ 가수 겸 방송인 황보가 인도네시아로 떠난다. 인구의 약 90%가 무슬림인 이슬람 문화권이자 세계 희망지수 1위인 인도네시아! 우리가 미처 다 알지 못했던 인도네시아에서 김현숙과 황보의 거침없는 ‘살아보기’가 시작된다. 어느덧 마흔 언저리, 일탈을 통해 ‘나’를 찾는 여정이 필요했던 두 사람은 첫 번째 살아보기 도시로 ‘자카르타’를 찾는다. 교통체증으로 악명 높은 자카르타지만 오히려 여유가 있는 인도네시아 사람들 속에서 포용과 공존의 정신을 배운다. 김현숙과 황보는 현지 사람들과 만나고 부딪치며 언제나 미소를 짓는 사람들과 가식적이지 않은 그들의 순수함에 점점 빠져들어 간다. 인생의 중턱에서 선택한 자카르타에서는 과연 무슨 일이 펼쳐질까?
# 포용과 공존의 도시, 자카르타에서 살아볼까?
모스크 사원 옆에 바로 대성당이 있고, 기독교 건축가가 이슬람 사원을 설계했을 정도로 다양한 문화를 인정하고 포용하는 자카르타! 이곳에서 살아보는 것은 과연 어떨까? 먼저 두 사람은 공부한 인도네시아어를 활용해 환전에 나서고, 골동품 거리로 유명한 인도네시아의 인사동, 잘란 수라바야로 향한다. 그동안 갈고 닦은 인도네시아어 실력으로 흥정에 도전한 그 결과는? 350여 년 동안 네덜란드의 지배로 인해 유럽 건물 양식이 남아있는 구시가지 꼬따뚜아를 시작으로 인도네시아 문화에 흠뻑 젖어 든 두 사람은 내친김에 홈스테이까지 경험하면서 인도네시아의 삶에 깊숙이 들어가 본다. 홈스테이 가정에서 요리 솜씨를 한껏 발휘해 본 현숙! 과연, 현지 가족의 입맛을 사로잡았을지 궁금증을 더한다.
책 동무 백영옥 작가는 서울 시내가 한눈에 보이는 종로의 대표 명소, ‘낙산공원’에서 문정희 시인을 만났다. 두 사람은 따스한 가을볕과 함께 성곽길을 걸으며 문정희 시인의 근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문 시인은 벤치에 앉아 잠시 쉬기도 하고, 길가에 핀 들꽃을 보며 자신의 시의 삶을 돌아본다.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등 9개 국어로 번역해 출판한 자신의 작품을 보며 그녀는 해외 진출 계기와 시를 번역하면서 생긴 여러 일화를 회상했다.
동네 책방으로 향하는 길에 여성작가로서의 삶의 대한 이야기를 꺼낸 문정희 시인은 처음에는 ‘여성의 삶’이 부당하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여성으로 태어난 것이 시를 쓸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던 것 같다고 밝혔다. 이후 책방에 가까워지자 문 시인은 책과 책방이 삶의 일부인 뉴욕에 비해, 우리나라는 공부에만 집중되어있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하지만 요즘은 동네 책방이 늘어나 문화적인 교류의 공간이 확대되어 가는 것 같다며 동네 책방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았다.
짧은 여정을 마치고 두 사람은 시집 전문 책방 ‘위트 앤 시니컬’에 도착했다. 오늘의 책방은 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 자리를 지킨 혜화동의 오래된 책방, ‘동양서림’ 안에 있다. ‘동양서림’ 속 나선형 계단을 올라야만 갈 수 있는 독특한 구조인 만큼 책방 내부도 아늑함으로 가득했다. 유희경 대표는 책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 시집 전문 책방을 운영하는 것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한다. 그럼에도 시집 전문 서점을 운영하는 이유는 ‘자신에게 맞는 시집을 찾아 기뻐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것이 행복이기 때문’이라고 얘기했다.
뒤이어 독자들과 함께 문정희 시인의 작품 『작가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작품에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 한 독자가 문정희 시인의 상징과도 같은 ‘머플러’에 대해 질문을 했다. 이에 문 시인은 몸매를 가리기 위해 머플러를 두르기 시작했지만, 머플러에 관한 시를 쓸 정도로 시와 함께 자신을 표현하는 아이템이 되었다고 답변했다.
또한, 시란 무엇이냐는 질문에 ‘몸속에 호흡처럼 살아 있는 것’이라고 답하며, 시는 자유롭게 마음껏 쓰는 것이 중요하다고 대답했다. 이후 문 시인은 올해로 작가 데뷔 50주년을 맞이한 소감을 이야기하며, 지금까지 작가로 살아올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녀는 첫사랑처럼 푹 빠져버린 시에, 작가로서 헤엄치다보니 지금의 자리로 오게 되었다. ‘시를 썼다기보다 시를 살아버렸다’고 말하며 등단 50주년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 쓸모없는 호기심이 천재를 만든다
어딘가 별나고 지나치게 산만하다. 때로 무언가를 노트에 적는다. 그의 노트는 이해할 수 없는 엉뚱한 말들로 채워져 있다. 평범한 사람이 본다면 ‘쓸모없다’고 할지 모르지만, 이 모든 것들은 그가 ‘해야 할 일’들이었다. ‘하늘은 왜 푸른가?’ 너무나 당연해서 사람들이 관심을 두지 않는 자연현상부터, ‘딱따구리의 혀를 묘사하라’ 살면서 단 한 번이라도 생각해본 적 없는 기상천외한 질문까지. 세상은 끊임없이 그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동성애자, 사생아, 왼손잡이, 제대로 교육받은 적도 없는 무식자. 세상에서 그는 단지 주변을 맴도는 이방인일 뿐이었다. 천재와 괴짜 사이, 그의 이름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이다.
#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떠난 500년 후의 미래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1452년 이탈리아 빈치에서 태어나 1519년 5월 2일 프랑스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로부터 정확히 500년의 시간이 흐른 2019년 5월 2일, 레오나르도 다빈치 타계 500주년을 맞아 이탈리아와 프랑스는 공동 추모 행사를 열었다. 최근 양국은 난민 정책 등 외교적 문제로 첨예한 갈등을 겪었다. 이때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양국의 관계를 개선하는 긍정적인 역할을 해냈다.
현재 세계 곳곳에서는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기념하는 다양한 전시회와 행사가 진행 중이다.